신선하기도 하면서 불편한 느낌도 어느 정도 느껴졌던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었다.
신앙생활 속에 거하면서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에 확실한 분별을 느끼고 있었던 싱클레어에게 악의 세계 안에 담겨져 있던 이면의 뜻을 깨닫게 해주고 큰 충격을 준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있어서 단순한 친구이며 형이 아닌 선생이 되고 정신적 지주가 된 내용들은 싱클레어뿐만 아니라 책을 읽은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첫 만남과 첫 대화 속에서 오고갔던 의제인 카인의 표
적의 내용이 참 의아하면서도 심오하게 느껴졌었는데 작중 데
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카인의 이마 위에 있는 표적은 그가
약하며 겁이 많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보호하시기 위하여 준
것이 아니라 카인은 사실 강자이며 여호와께서 그의 강함에
대한 보상으로 표적을 준 것이고 사람들은 그 카인의 표적을
통해 그가 범인이 아니고 범접할 수 없는 육체와 정신의 강
인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게 하는 수단이라는 얘기를 한다.
이것은 분명 싱클레어에게 있어서 파격적인 경의 해석이었
다.
그리고 차츰 데미안이 한 그 말이 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난 이 부분에서 무서움이라는 감정을 없잖아 느낀 것 같
았다.
부모님을 통하여 가정을 통하여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체득하고 가르침 받아왔던 진리가 낯선 타인에 의해서 쉽게 무너지는 그 모습은 진리가 황폐화 되어버리고 정신이 브레인 워싱 (세뇌)를 받은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는 어린 싱클레어에게 있어서 당연한 결과이다. 그는 근거있는 신앙, 합리적인 신앙을 한 것이 아니라 맹
목적인 신앙을 하고 있었던(가정을 따라 믿고 있던 신앙이었기 때문에) 상황이었던지라 분별력이 없었고 줏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책을 읽으면서 보게 된 싱클레어의 모습은 파멸이 아닌 행복과 완전을 향한 길로 가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데미안이 던진 신선한 충격들은 싱클레어만의 세계를 확립시켰다.
좌편강도에 대한 데미안의 말도 마찬가지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을 옹호하고 커버했던 우편강도와는 달리 좌편강도는 구원
이 이르지 못할 지라도 강한 주장과 개성을 드러내었고 이것이 더 남자다우며 고집있는 태도라고 하면서 데미안이 이를
극찬했다.
카인과 좌편강도, 그들은 당연히 성서에 입각하여 살펴보면 구원을 받을래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주었던 가르침은 구원의 길이 아닌 정죄받음의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오히려 신앙 안에 있었던 싱클레어에게 새가 알에서부터 나와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고 긍지를 불어넣었던 것이다.
데미안이라는 이름에서 이교도적이고 이단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던 그와 대조하여 볼 때 데몬(악마)를 뜻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싱클레어에게 있어선 다에몬(수호신)과 같은 존재였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다. 그래서 ‘종말의 시작’ 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독일과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고 이 과정 안에서 데미안이 결국 출혈로 인해 싱클레어의 곁에서 죽게 되었는데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정신과 몰아일체 하였다고 서술하는 부분과 마지막 글씨에서 그를 강조하여 글씨체를 드러낸 것을 통해서 과연 데미안은 수호신, 정신적 지주로서 남아있었다는걸 확신하였다.
진리가 아닌곳에서 진리를 탐구하고 예수만을 바라보았던 신앙에서 압락사스에게 새가 되어 날아가는 신비하면서도 선악이 조화롭게 공존하는듯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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